시간 너머의 왕녀
- 등록일2025.06.12
- 조회수311
창문을 열어 놓고 잤던가?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낯선 풀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부드러워야 할 침대 시트의 감촉도 어쩐지 거칠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 초록색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가 어디지?”
루벨로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콧등에 작은 잎사귀 하나가 내려앉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는 흙과 낙엽 위였다.
“분명 난…….”
피곤함에 지쳐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침대에 몸을 던졌었다.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에.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얼굴을 비비다가 그대로 잠들었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고개를 숙여 옷매무새를 만지작 거렸다. 처음 본 옷이었고 그녀의 발에 꼭 맞는 신발도 양쪽 다 잘 신고 있었다.
“숲 같은데… 무슨 숲이지?”
풀과 작은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머리 위로는 거대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솟아 있었다.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갈라진 햇살이 조용히 아래로 스며들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이런 곳에서 깨어날 이유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무작정 앞으로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걷고 또 걸어도 눈에 들어오는 건 울창한 나무뿐이었다. 목이 탔다. 입술은 바짝 말라 찢어질 듯했고, 건조한 공기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를 긁었다.
“…주세요.”
우뚝.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다시 듣기 위해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의 음성이었다.
“도와… 주세요.”
금세 꺼져버릴 것 같은 촛불처럼 힘은 없었지만, 절박함이 깃든 애원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헙.”
도착한 곳에서 발견한 건 산산조각 난 마차.
너무 충격적이라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마차는 찌그러진 채로 뒤집어져서 부서진 파편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는 마부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안타깝게도 눈을 뜬 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제발… 누가… 없나요?”
더 가냘파진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마차 안에서 들렸다.
마차의 문이 이음새가 틀어져 딱딱하게 걸려 있었다. 있는 힘껏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낡은 경첩이 삐걱거리더니 마침내 뜯기며, 안쪽이 드러났다.
“헉… 헉… 괜찮니?”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을 간신히 내쉬고 있었다. 아이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루벨로사를 올려다보았다.
“기다려. 꺼내줄게!”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는 곧장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부서진 조각들로 마차 안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실수로 아이가 더 다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마차 안에서 꺼냈다.
“조금만 참아. 의원한테 데려가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희망을 주어야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무작정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이까지 등에 엎은 채.
나무 그림자가 갈수록 길어지더니 결국 해가 졌다. 등에 짊어진 작은 몸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래도 등을 간질이는 미약한 숨은 그녀의 힘이 되었다.
아직 괜찮아. 살아있어.
힘내자. 언젠가는 숲이 끝날 거야.
아이의 숨결이 등에 닿는 것을 느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낯선 풀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부드러워야 할 침대 시트의 감촉도 어쩐지 거칠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 초록색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가 어디지?”
루벨로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콧등에 작은 잎사귀 하나가 내려앉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는 흙과 낙엽 위였다.
“분명 난…….”
피곤함에 지쳐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침대에 몸을 던졌었다.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에.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얼굴을 비비다가 그대로 잠들었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고개를 숙여 옷매무새를 만지작 거렸다. 처음 본 옷이었고 그녀의 발에 꼭 맞는 신발도 양쪽 다 잘 신고 있었다.
“숲 같은데… 무슨 숲이지?”
풀과 작은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머리 위로는 거대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솟아 있었다.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갈라진 햇살이 조용히 아래로 스며들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이런 곳에서 깨어날 이유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무작정 앞으로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걷고 또 걸어도 눈에 들어오는 건 울창한 나무뿐이었다. 목이 탔다. 입술은 바짝 말라 찢어질 듯했고, 건조한 공기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를 긁었다.
“…주세요.”
우뚝.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다시 듣기 위해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의 음성이었다.
“도와… 주세요.”
금세 꺼져버릴 것 같은 촛불처럼 힘은 없었지만, 절박함이 깃든 애원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헙.”
도착한 곳에서 발견한 건 산산조각 난 마차.
너무 충격적이라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마차는 찌그러진 채로 뒤집어져서 부서진 파편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는 마부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안타깝게도 눈을 뜬 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제발… 누가… 없나요?”
더 가냘파진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마차 안에서 들렸다.
마차의 문이 이음새가 틀어져 딱딱하게 걸려 있었다. 있는 힘껏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낡은 경첩이 삐걱거리더니 마침내 뜯기며, 안쪽이 드러났다.
“헉… 헉… 괜찮니?”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을 간신히 내쉬고 있었다. 아이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루벨로사를 올려다보았다.
“기다려. 꺼내줄게!”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는 곧장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부서진 조각들로 마차 안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실수로 아이가 더 다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마차 안에서 꺼냈다.
“조금만 참아. 의원한테 데려가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희망을 주어야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무작정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이까지 등에 엎은 채.
나무 그림자가 갈수록 길어지더니 결국 해가 졌다. 등에 짊어진 작은 몸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래도 등을 간질이는 미약한 숨은 그녀의 힘이 되었다.
아직 괜찮아. 살아있어.
힘내자. 언젠가는 숲이 끝날 거야.
아이의 숨결이 등에 닿는 것을 느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